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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꽃동네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251회 작성일 10-11-2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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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에 꽃은 피었는가?


“저~, 꽃동네에 꽃이 있습니까?”


S 수사의 미소가 내게 날아왔다. 고요한 웃음은 확연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똑같은 질문을 아마도 천 번쯤은 받았으리라. 우문(愚問)을 던진 것이 순간 괴로워졌다.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꽃동네의 소슬한 바람이 스쳐갔다.

꽃동네의 5월은 아직 서늘했고, 난 아직 훈련병의 티를 벗지 못한 채 꽃동네 공중보건의사가 되었다.
소위 ‘꽃동네 의사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배우고 있는 것이다. S 수사의 얼굴은 신앙과 세월의
축복으로 기품이 있어 보였다. 그는 의사이자 꽃동네의 수도자다.

“여기 있는 가족들이 모두 꽃동네의 꽃이라네.”

그가 돌연 걸음을 멈추면서 말했다. 꽃동네에선 이곳에 입소해 생활하는 사람들 모두를 가족이라 부른다.
이천 명이 넘는 기록적인 대가족인 셈이다. 그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 가족 대하듯 성의를 다하라는
뜻인가 보다. 아직 피우지 못한 여린 꽃을 돌보듯 하라는 의미일 게다. 앞으로 내가 가꾸고 보듬어야 할
존재가 꽃이라니, 퍽이나 아름답고 바람직한 이야기 아닌가? 의사로 30년을 더 살게 된다면, 그 십분의
일을 꽃동네 의사로 살게 된다. ’꽃을 가꾸는 의사라!’ 멋진 일이다. 그 낭만의 질감이 의대를 졸업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 때의 로망(roman)과 닮았으므로, 충분히 달콤한 상상이었다.

내게 처음 맡겨진 꽃은 결핵에 걸린 듯 했다. 우리가 병실 침대 맡에 이르렀을 때, 마침 그는 장미처럼
붉은 선혈을 뱉어내는 중이었다. 처참히 구겨진 휴지에서 뜨거운 장미는 더욱 붉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정작 그는 46년이란 세월을 사는 동안 꽃으로 피어본 일이 한 번도 없었을 것 같아 보였다.
그의 또 다른 병명은 다운 증후군(Down syndrome)이었다. 그는 남보다 21번 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지만, 그 대가로 그에게는 인간답게 사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부족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의 앉아있는 모습이 어쩐지 생소해 보였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아온
다운 증후군 환자는 대부분 어린 아이였다. 다운 증후군 어른을 본 일이 거의 없으니 그 생경함이
당연했다. 탄력을 잃은 피부와 성성한 머리카락을 빼고는 다운 증후군 아이와 닮아 있었다. 그가
누런 이와 앙상한 팔다리를 내 보였다. 움푹 패어 어두운 눈이 낯선 이방인의 움직임을 따라 초점
없이 흔들렸고, 두껍고 느슨한 아랫입술로는 과도한 분비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타고난 그의 병명
처럼 삶의 필요조건들은 다운(down), 다운, 다운을 거듭하다, 더 이상 내려앉을 곳 없이 병들어
이곳에 들어왔을 것이다. S 수사 말이 다제내성(Multi-drug resistance) 결핵이라고 했다. 폐결핵과
장결핵의 병존(竝存)이 그를 두어 번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다고 했다.

“이제부터 제가 담당의니까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기대했던 응답은 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말을 전혀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그는 스스로 단발의 음파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하아, 이를 어쩐다? 중증이다. 불편한 느낌을 만회해보고자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악수하듯 흔들어
보았다. 왜소한 손이 무기력하게 흔들렸다. 그는 들풀처럼 말을 못했고, 잡초처럼 혼자 이동하지 못했다.

나의 때 아닌 꽃 가꾸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가 언제 어떤 경로로 꽃동네에 왔는지 아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곳에서 생활한지 오래되었다. 애초에 보호자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걸 내가 결정해야 했다.
혹시 상황이 악화되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와도 그의 인권을 대변할 이 하나 변변히 없는 것이다.
무거운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차라리 진저리가 쳐지던 까다로운 보호자라도 있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한동안 덮어 두었던 교과서와 저널을 뒤졌다. 내게 맡겨진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할 처방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결핵협회로 치료 가이드라인(guideline)을 구했다.


그와는 어떠한 대화도 불가능했다. ‘어어’나 ‘우어, 우어’ 등 다른 가족이 내는 단발의 울림이라도
들어봤으면 좋겠다. 내가 이 환자가 된다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가장 원하게 될까? 이 같은 사유의
반복 덕분에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를 탐색할 수 있는 방법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화학적 검사수치와 계기판의 숫자로부터 오감(五感)은 점차 자유로워졌다. 그의 눈동자의 초점과 주시,
피부의 탄력과 색감, 앉은 자세의 안정성과 흔들림, 입가에 고인 분비물의 양과 질감 그리고 악수할 때
내 손을 따라 쥐는지 등이 그의 건강을 판단하는 주요한 근거들이었다.

회진 시간이면 침대 맡에 잠시 앉아 “잠은 잘 주무셨어요? 식사는 좀 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그 물음은 무의미하게 허공에 흩어졌지만, 그에게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내 몸의
레이더가 움직였다. 문진과 동시에 시진, 청진, 촉진을 시행하는 것이다. 충분치는 않았지만 유용한
방법이었다. 그가 앉아있지 못하고 누워 있거나, 내 손에 전해오는 악력이 희미해지면 혈액검사를
시행했다. 붉은 혈액은 여지없이 ‘항상성(homeostasis)의 소실’ 이라는 결과를 내어 놓았다.
점점 그는 나를 의지하고 믿었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말했고, 그 손의 악력이 그렇게 일러 주었다.
나도 그의 손을 더욱 세게 쥐며 곧 나을거라 말해 주었다. 주사바늘이 괴로운 그에게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했다.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그는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었다.

두 달이 흘러 7월이 되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다행히 그의 병세는 조금 호전된 듯
했다. 객혈의 양은 줄었고, 장밋빛 선혈도 건포도 빛깔로 바뀌었다. 앙상한 팔뚝에도 살이 조금 오르는 듯
했다. 자원봉사자 말이 식사량도 약간 늘었다고 했다.

가까운 진천읍내는 물난리가 대단하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환자 분이 좀 이상해요’
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병실에 올라갔다. 그를 보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가 누워서 초점 잃은 동공으로 나를 보았다. 평소 건조해서 각질이 앉아있던 피부는 식은땀
으로 축축했다. 청진 당하는 팽만한 복부에서는 무서운 적막이 흘러나왔고, 복벽은 강직도가 증가해 있었다.
내 손이 배를 스칠 때마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았다. 결핵성
복막염이 의심되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인근 3차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수화기를 들었다.
전원(transfer) 되어 갈 병원 응급실에 연락해서 환자 소견에 대해 설명했다.

비바람이 세다며 투덜거리는 앰뷸런스 기사의 등을 떠밀었다. 오한으로 떠는 그의 손을 잡았다. 평소와 달리
그가 내 손을 세게 잡았다. 큰 병원에 가서 치료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 말해 주었다. 그의 이완된 눈이
두려움으로 떨리는 걸 보았으나 애써 외면했다. 왼쪽 가슴이 저려와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흑색 변 같은 비바람 속으로 멀어져가는 앰뷸런스를 바라보았다. 앰뷸런스는 한참이나 멀리까지 비상등을
껌뻑거렸다. 불빛은 그의 운명처럼 희미해지며 어둠속에서 작아졌다. 밤새 병원 건물 모퉁이에서는 ‘웅웅’
거리며 바람이 구슬피 울었고, 새벽녘까지 내게 잠은 찾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죽음의 단어는 추호의 모호성이 없었다. 담당 레지던트 말이
그는 도착한지 여섯 시간 만에 사망했다고 했다. 사인은 결핵으로 인한 이차성 복막염과 패혈증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담당 레지던트는 유감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그는 나비가 되었다. 한 번도 피어보지 못한 꽃이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봄 동산이 아름다운 꽃동네에서 당당히 만개하길 바랐는데, 비온 뒤 질척한 꽃잎처럼 모든 희망을 접고
냉정히 가버렸다. 그는 홀로 죽어갔다. 사람도 꽃도 죽음 앞에서는 그러하다.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가슴에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11월, 늙고 소멸하는 계절의 출구에 섰다. 밤새 내린 비로 병원 앞마당을 노랗게 덮은 은행잎을 보며,
기억의 노트를 꺼내본다. 가을에 접어들어 비로소 나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음의 순환을 보았다.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질병과 죽음의 자연사를 보았다.
꽃동네 의사로 서는 일은 환우들에 대한 공감적 상상력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말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이들의 입장이 되기 위해선 잠시 나의 직분과 조건들을 기억 속에서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이들의 표정을 제대로 보려면 잠시 눈을 감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두 손으로 귀를 막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꽃들의 신음 소리를 지나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이 영롱한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들 자신으로서 복되고 아름답다.

어느 날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가 내게 물었다. “꽃동네에 진짜루 꽃이 있어?”

  (Daum cafe-호스피스 아카데미-"삶의 현장" 중에서)
  (**As You Will^^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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